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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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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은

제목


[성탄절공동설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 1: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 이름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떤 이름을 붙여야할지 고심하며, 여러 개의 이름을 써서 불러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아이의 부모인 사람들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의 의견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이름을 얘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얘기하자면 예람의 이름을 한 번씩 쓰면서 불러보았습니다. 이름들을 써놓고 나니 각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름을 지으신 분들이 아기를 생각하며 지은 뜻이 있을텐데 이름의 글자만으로는 모두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가령 저 같은 경우는 제 이름의 뜻을 지혜롭고 은혜롭게 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를 말하다가 제 말을 들은 아버지가 은혜로 지혜로워지라는 뜻이라고 정정해 주셨습니다. 지혜와 은혜를 같은 맥락에서 보는 전통에서는 저와 아버지의 해석이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지혜를 지식과 같이 자신이 쌓아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지’와 ‘은’이 대립되고 갈라지는 의미로 여길 수 있기에 원래의 뜻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름마다 글자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 친숙하게 불러볼 수 있는 예람의 이름과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에게 그 존재가 알려지면서부터 예수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예수,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이름이 붙여집니다. 그 이름은 이 땅에서 얼마를 소유할 것이라는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기괴하게 들리겠지만 아이가 태어나는데 돈을 많이 벌 이름으로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수아’라는 말이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것처럼 당시 사회에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철수와 영희처럼(!), 예람 그 누구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친숙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그 친숙한 이름이었던 ‘예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로는 누구도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2. 그 이름의 의미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은 단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자손손 이어온 바램이었으며, 온 민족의 바램, 기원, 염원이 담긴 대단한 의미의 말입니다. 그 구원자의 통치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 꽃피어나는 하나님 나라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오고, 먼저 부름 받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라는 것은 설날에 떡국 먹는 것 같은 그들의 정서였습니다. 이 민족이 가진 정신과 염원은 다른 민족과 달랐고,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특별하게 영향을 주겠습니까. 이러한 염원을 가슴에 품고, 지낼 땅이 없어 나그네 세월을 보내야 했던 그들은 하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발붙일 수 있기를 구하는 모습도 분명 그들의 정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교한 성전과 예식과 율법이 있음에도 그것들은 껍데기요, 형식일 뿐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백성으로 부르신 사람들 안에서도 그들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 그 이름 빛이 되어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지만 우리가 그 이스라엘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그 이스라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살이라는 말을 제가 쓰면 송구스럽지만 개개인의 경험은 모두 다르고 그 가운데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경험은 힘이 세고 어느 정도 지속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 경험은 힘을 발해서 금방 어려운 경험가운데 놓여있는 것처럼 우리를 헤매게 합니다. 마치 예전에 그 경험 속에 있는 것처럼 상황판단을 하게 합니다. 되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이 모두 그렇다’ 라는 착각도 서슴없이 합니다. 두려움에 왜라는 질문도 하지 못하고, 자기의 문제를 발설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은 되풀이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어둠에 빛을 비추시는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이 두려움에 길을 내시는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이 생명없음에 생명을 가져오시는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이 어둠속에서 웅얼거리고 아파하는 자를 위해 함께하시려는 분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혼자’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어느 이름도 흔한 이름이 아니고, 그저 친숙한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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