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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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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문순

제목


누가복음 족보
본문
이사야 42:1
누가복음 3:21-23

교독문 49
빌립보서 2장

찬송
89 샤론의 꽃 예수
92 어둠의 권세에서
165 저 산 너머 먼 동 튼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 차이

1.

한 달 전 설교에서는 마태복음 족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고 자라는 동안 요셉을 비롯해 구약을 기억하며 하나님 약속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고 그 뜻을 깨우쳐 자기들 대로 이해하며 순종하여 하나님 역사에 동참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장구한 시간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과 우리를 보게 하는 마태복음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유대인의 역사가 다윗의 시대를 지나고 포로 생활를 지나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흩어지지 않은 신앙 공동체의 믿음에 기초해 벌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확인하며 우리의 현재 삶의 시간을 되새겨보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현재 삶의 시간 역시, 각자가 저마다 혼자 고립되 시간이 아니고 이웃과 무관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존재하는 순간들인 것이니까요.

설교를 마친 후 대화를 나누면서 질문이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시작을 하는데 누가복음 어떠한가, 왜 마태복음과 다른가, 왜 아담까지 거슬러 올가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 본문을 통해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아니라 교우들께서 함께 추적해보시고 질문에 대한 잠정의 답을 각자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시작부터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간단하게 책의 성경을 규정하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이렇게요. 그리고는 바로 족보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마치 편지를 쓰듯 시작하지요. 글쓴 이가 '데오빌로'라는 이를 위해 쓰는 글이며 글쓴 이 자신은 말씀의 목격자와 전파자들에게 전달 받아 엮어냈다면서요. 모든 것을 근원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자신도 전달받은 이야기임을 먼저 밝혔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말씀을 전달 받고 전달하는 무수한 순간과 과정이 날줄 씨줄이 되어 우리에게까지 이른 것처럼 말이지요.

글쓴 이의 처지는 지금 우리와도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을 전달받고 또 우리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으니까요. 당시에 그들에게는 그때까지 존재했던 구약 문헌과 예수에 관한 전승과 문헌들이 있었겠지요. 그것 역시 누군가가 전하고 누군가는 전달받은 것들입니다.

3.

요한과 예수 탄생

어떤 이유에선지, 마태복음과 달리 누가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배경부터 자세히 기록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을 의인이라고 기록하며 요셉의 역할이 부각된 반면에 누가복음 서론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 의인인 부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인데 분향하러 성소에 홀로 들어갔다가 천사를 통해 말씀을 전달받습니다.
천사는 노인 부부에게서 아들 요한이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지요.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바로 믿지 못해 한동안 벙어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가 벙어리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적인 그의 믿음의 부족을 드러내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야기가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가랴와 달리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사가랴에 비해 믿음이 좋은 이들로 그려집니다. 기록된 본문만 가지고 보면 사가랴와 질문과 마리아의 질문은 엇비슷해 보이는데 누가복음은 그들을 다르게 그리고 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보다 여인들의 믿음을 더 좋게 그리지요. 임신한 엘리사벳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1:25)"

주님이 엘리사벳의 부끄러움을 없애고자 뜻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사벳은 그것이 주님이 하신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와을 때는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1:41) 마리아는 이렇게 말하지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1:38)"

요한이 태어난 후 그의 이름을 지어야할 때에야 사가랴의 혀가 풀려 다시 말을 하고 그도 성령으로 충만해져 예언을 합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노인과 동정녀를 통해 잉태된 이들임을 공통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궁극으로 겨냥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4.

마리아의 찬가와 사가랴의 예언

누가복음에서 찬가는 여성 마리아의 입을 통해 전달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로 시작됩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신다 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다고 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긍휼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임을 찬양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람들이 생각하는 높낮이를 뒤집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여성의 입을 통해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다는 긍휼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가랴의 예언은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고 시작하지요.

사가랴의 예언에는 긍휼과 구원의 소망을 찬양하며 요한의 사명을 예언하며 하나님이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을 드러냅니다.

마리아 찬가와 사가랴의 예언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통해 펼쳐질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암시한다고도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마치 한 팀이 되어 활동하는 것처럼 서론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5. 요한과 예수

그러나 누가복음은 3:21에서 예수께서 서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표현은 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의도일까요? 위대한 의인이지만 요한은 사람이니까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에도 기록된 세례자 요한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지도자였습니다만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고 요한은 사람이라는 구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예수님의 정체를 밝히기는 글이기도 함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요한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구별시켜야했을 테니까요.

이사야 예언처럼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는 사실을 누가복음은 분명히 합니다. 요한은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을 것을 설교하며 그 길을 묻는 자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나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는 자이나 앞으로 오실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임을 예언합니다.(3:16)

6. 예수 세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내려오시며 하늘에선 이런 소리가 울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너를 기뻐하노라"

7. 예수 족보

예수가 시작하실 때 서른 살 쯤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족보는 마태복음과 달리 오름차순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태복음처럼 아브라함이 아니라 그 윗 조상을 거슬러 하나님의 아들 아담에 이릅니다. 아시다시피 소수의 인물은 겹치지만 많은 이름들은 마태복음과 다릅니다. 인물 수도 누가복음에 더 많습니다.

마리아 계보라고 추정했던 이들도 있지만 23절에 요셉의 엘리의 아들이요, 라고 하면서 요셉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으니 그또한 확실하게 마리아 계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8. 족보 앞뒤의 이야기

이 족보의 차이를 설명하기엔 알려진 바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나 본문 배열은 흐름 속에서 족보의 역할을 추정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밝힌 후에 족보가 배치되고 그 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십니다. 성령을 가득했던 예수님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광야 시험에 흔들림이 없으셨지요.

왜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갔을까?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14-15)

고리도전서 15장에서도 거론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습니다.(45)"

누가복음이 바울의 뜻을 반영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예수님이 비교된 것은 누가복음의 흐름을 추정해보는 힌트가 되기는 합니다. 모두 알고 계시듯이 아담은 유혹에 넘어가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인물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아들로서 광야 시험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9.
신학자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작이(3:23)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를 드러낸다고도 합니다. 아담과 다른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이쯤 이르니 올 초 신년 설교에서 박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 한 토막이 떠오릅니다.

"‘새롭다’는 말에는 적어도 두 가지 뜻이 뒤섞여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서 ‘근래’나 ‘신생’을 이를 때 ‘새롭다’고 합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생아’/‘새 아이’라는 말과, 오래된 나라와 달리 건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국가’/‘새 나라’라는 말에 나오는 ‘신’/‘새’라는 낱말은 모두 ‘새롭다’는 뜻입니다. 이와는 달리, 어떤 속성을 대비시켜 이전 것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다른 속성을 일러줄 때 ‘새롭다’고 합니다. 일찍이 알지 못하던 색다른 생각을 일러, 생각이 ‘새롭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뜻이 겹치기도 하지만, ‘시간상’으로 최근이라고 해서 ‘새롭다’고 하는 뜻과, ‘본질상’으로 이전의 것과 구별되고 차이난다고 해서 ‘새롭다’고 하는 뜻은 꼼꼼히 따져보면 서로 다릅니다. 우리 말글이나(‘새롭다’) 잉글리시 말(‘new’)에서는 두 뜻이 한 낱말 속에 뭉뚱그려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의 본디 말글(그리스어)에서는 두 가지 뜻이 서로 다른 낱말(시간상의 뜻은 ‘네오스/neos’, 본질상의 뜻은 ‘카이노스/kainos’)로 쓰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작은 단순한 시간의 새로움을 넘어 아담과는 다른 본질의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일관된 것이나 아담의 후예로 하나님을 몰라보고 매번 그 뜻을 거스르며 죄짓는 인간의 처지에서는 예수를 믿고 순종할 때 죄를 용서받으며 본질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시니까요. 그런데 그만큼 우리는 그 말씀을 이전에 우리 각자가 알던 바와 다른 새로운 것으로 듣고 있을까요? 새로운 말씀으로 아담과 본질적으로 다른 예수를 따르며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대화 시간에 교우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족보가 왜 다른가, 각자 추적하신 대로요.



기도하시겠습니다.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누구에겐가 말씀을 전해 듣고 누군가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을
저희가 얼마나 귀히 여기며 진지하고 심각하게 임하는지 돌아봅니다.
주신 말씀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나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이웃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하나님 말씀을 구하는지 돌아봅니다.
아담과는 아주 다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자 하는지
알고자 절실히 구하는지 돌아봅니다.
그 말씀따라 얼마나 새롭고 다른 기독교도로 살고자 하는지 돌아봅니다.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어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희를 낮추시고
들려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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