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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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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은

제목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일시: 2022년 3월 13일
본문: 마가복음 5: 36-37



찬송:  새2찬양 성부 성자 성령, 새390 예수가 거느리시니, 새312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교독문: 125

1.

마가복음 4장의 기적은 예수님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나타남(계시)’의 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며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림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통해 알려집니다. 기적은 소문을 듣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묻게 합니다.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게 합니다. 그가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으므로 온갖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입니다](3:10). 예수께서 고쳐 주셨으므로 사람들이 고쳐주심을 바라고 몰려들었습니다.(앞문장과 중복)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귀신이야기가 나옵니다. 병자와 귀신의 이야기를 연이어 함은 질병과 귀신들림이 모두 귀신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치유를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병자는 특정한 질병을 가지고 그를 괴롭히는 귀신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고 봅니다. 요는 질병에 대해 비정상으로 보는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질병과 관련해서 귀신을 얘기했을 뿐 귀신론을 다루지는 않고, 질병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한 가지 유의미한 것은 당시의 세계관과 달리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힌다[고 보았습니다](7:15).

2.

오늘 본문의 여인은 이름 없는 여인입니다. 그녀의 앓아온 병명과 병을 앓은 기간이 여인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 없는 여인은 내 주변에 알지 못하는 여인이 되었다가, S사가 세운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했다가, 그 반도체를 사용한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나와 연결된 사람이기도 했다가, 예수 뒤에 있는 나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기 전까지 이 여인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함축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병의 원인은 정확하게 규명할 수 없었고 감염유무도 확실하게 분별되지 않았습니다. 방역체계가 약하던 때에 병에 걸리면 율법에 규정된 대로 그녀는 공동체와 분리되어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하혈하는 여인에 대한 레위기의 규정은 이러합니다.

그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에 그가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그가 앉는 모든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한 때의 부정과 같으니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레15: 26-27)

유출은 불결하고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여인은 가까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인들은 한 달에 한 번 유출 증상이 있을 때에도 장막을 나서지 않았습니다(창세기). 부정한 사람과 분리되어 지내야 했기(레위기15:31)에 마을 공동체 밖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부정하여 분리된다는 것을 부드럽게 본다면 몸의 이상이 있을 때에 자신의 몸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생에 신경 쓰고, 몸에 관심을 기울여 불필요한 활동을 피하고, 타인들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아 심신이 안정되어 지내게 됩니다. 이런 측면은 환자들을 보호하고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환자들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구분되고 축출되어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지내게 됩니다. 이 내용으로 검색하자 마을공동체 성벽 밖에서 여인들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림을 보았습니다. 꽤 충격이었습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을 이루기 전(보통 12세)의 여인이라면 아버지 어머니 형제 친구들과 공동체와 분리되었을 것이고, 가정을 이룬 다음의 여인이라면 가까이 할 수 없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안아줄 수 없는 엄마가 되어 ‘혼자’가 되어갔을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전 재산을 탕진할 만큼 치료에 노력을 기울이고,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건만 기대가 깨어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의사에게서, 사람에게서는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때에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픈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인은 그 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텐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인은 자기 욕망을 되뇐 것이 아닙니다. 여인은 예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말했습니다.

확신은 병으로 약해진 여인이 예수께 나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여인은 다음 순간 예수의 뒤에 섰습니다. 여인이 남자의 신체에 접촉하기 위해 접근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여인이 다른 사람에게 접촉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관습법을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얘기하는 것이 상업의 경우에는 허용되었지만 결코 흔하지 않았는데 그 여인은 예수 뒤에 섰습니다. 뒤에 섰다는 말은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9:20, 누가복음 8:44 두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인은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병자의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믿음대로 옷 가에 손을 대자 출혈의 근원이 마르고 몸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마술처럼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와 감응하여 능력이 나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은 마가복음에서는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으므로 누구라도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인데 누가 손을 댔냐고 물으십니까 반문합니다. 질문하는 분의 의도를 모르고 하는 말은 답이 될 수 없고, 그저 되풀이 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누군가가 내게 손을 댔다. 나는 내게서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을 알고 있다”며 수혜를 입은 사람을 만나고자 부릅니다. 그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떨면서 나와 엎드립니다. 자신이 예수의 옷을 만져야 했던 이유와 곧 낫게 된 경위를 거기 모인 백성 앞에서 알려야 했습니다. 치유받은 것을 숨겨야 했던 자신이 책망받으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께 나아왔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치료를 베푼 예수도 두려웠고, 또 법을 지키지 않은 자신을 향해 서 있는 사람들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3.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고통당한 딸의 삶을 알았습니다. 여인이 병든 자였기 때문에 지고 있었던 고달픈 삶의 짐을 알았습니다. 예수 외에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부정하다’는 말을 듣는 여인의 느낌을 아셨을 겁니다. 예수께서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았던 경험이 여인을 이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 여인이 사람들에게는 이해받는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인이 스스로 살 사회적 수단(직업)이 없었으니 도움을 구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짐작컨대 여인의 좌절은 자주 있었을 것이고, 친밀한 관계라 하더라도 거절은 있을 수밖에 없기도 했을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원인을 모르는 병이나 감염여부를 모르는 병에 걸린 사람을 대할 때 안타깝다고 생각하면서 조심하지 않겠습니까. 여인의 눈에 여인과 함께하지 않는 우리는 모두 안전하기 위해서 나만 아니면 된다고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여인이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병을 넘어서기 어려운데 예수께는 그 여인이 그로 인해 더 사랑하는 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온 딸의 믿음을 알았습니다. 딸에게 얘기를 하도록 했고 딸의 얘기를 사람들과 들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그 병을 고칠 수 있게 협조할 수 없는 사회가 문제인 것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그 사회에 통용되는 것을 지키느라 자신의 생명을 살지 못하게, 자기를 소외시켜야 되는 문제를 얘기하게 했습니다. 약한 사람을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가 불안정한,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는 걸 이해하게 했습니다. 병 가운데에서 자신이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던 사회의 취약함이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극복되어야 할 단절상태를 얘기하게 했습니다. 이 믿음의 딸이 함께 살아갈 이 땅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병이 나았음을 천명하게 했습니다.

4.
이 치유기적의 이야기는 우리가 인간적으로 절망의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여 해방을 맛보게 합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고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선(10:52) 것처럼 그 길을 뒤따르게 합니다. 예수께서 아픈 이들 곁에 가까이 하는 모습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뒤따라 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곁가지 같습니다만 제 주변에서 치유를 받은 분이 아픈 증상이 사라져 기뻐했는데 얼마 뒤에 재발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제가 믿음으로 치유를 받았는데 다시 병이 생기는 경우는 무엇이냐고 한 의사에게 물었더니 ‘하나님이 병을 고쳐주시지만, 일상생활을 바꿔야 하는 것은 환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치유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치유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 능력이 예수에게서 간 것은 믿음의 대가였습니다. 믿음과 치유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마태는 예수께서 말하실 때 나았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빌어주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여인을 불러서 말하게 하고 듣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음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를 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입은 여인은 의식이 달라진 믿음의 삶을 구가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혼자였던 것을 조장하고 단절을 부추기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믿음의 삶을 살고, 또한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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