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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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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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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6일 설교와 나
어렸을 때 읽었던 인어공주 이야기의 결말은 무척 슬프다. 주인공이 결국 약속된 시간 내에 왕자의 사랑을 얻어내지 못해 결국 마녀의 주문대로 비누방울이 되어 사라진다. 대체 그런 슬픈 내용의 이야기를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만들어 놓다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디즈니가 이 이야기로 애니매이션을 만들었을 때 큰 화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슬픈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마녀는 죽고, 인어공주는 왕자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에 마음 편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권선징악. 사필귀정. 착한 (우리) 편은 행복해지고 나쁜 (남의) 편은 응당 벌을 받는다는 것만큼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착하게 살아가는 이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치고, 세상 못된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떵떵 거리고 살기 일쑤다. 권선징악이란 말은 매우 예외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꾸역꾸역 이해하려는 경향은 누구나 보일 수 있다. 욥의 친구들처럼, ‘너의 죄 때문에 화를 당했으니 이참에 회개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이 모든 불행을 신실한 믿음으로 견뎌낸 욥에게 하나님은 큰 상을 주셨다”는 주일학교 식의 교훈을 되내이며 사는 사람이 되거나. 확신의 찬 그 목소리들은 나에게, 또 다른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이 어려움을 참아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할 수 있다. 혹은,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질러 이런 벌을 받는구나. 나의 죄를 참회한다. 모든 것이 명료하고 헷갈리는 법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안타깝게도 모든 것은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한낱 인간의 머리로 간단하게 그려내고 말 것이 아니다. 한 사람도 그저 단순히 한 가지 색으로 칠할 수 없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내 이해만을 바탕으로 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내 눈에 보이는 모습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대부분일텐데, 나는 그런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또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 내가 느끼는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창조주가 아닌 이상 세상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는 설교 중 목사님 말씀이 옳다. 내 좁다란 머리로, 비좁은 마음으로는 감히 그 큰 뜻을 헤아릴 수 없다. 자만하여 ‘안다’고 자신하는 순간 나는 바로 욥의 친구들과 같이 허망한 처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과 행동을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그렇다고 누군가 아파하고 슬퍼할 때 멀리 떨어져서 말을 아끼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가 좌절 속에 있을 때 아무도 손을 건네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예수의 사람으로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진지한 마음으로 고민하게 된다. 욥의 친구들처럼 허망한 이들이 되지 않고, 겸허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권선징악, 사필귀정 운운하며 내 눈 앞의 해피엔딩을 좇는 좁다란 인간이 아닌,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고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예수의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좋은 일이든, 나에게 나쁜 일이든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이웃에게도 그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전할 수 있는 그럼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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