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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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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석

제목


'성전'이라는 일품요리를 만드는 법
이번 주 말씀의 주제는 나의 몸이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말씀에 따른다면 비단 십자가 아래에서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의식을 진행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성전만이 아니라 거룩한 성령이 함께 하는 세상의 모든 좌표로서 성전은 정의되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라는 이분법적 몸의 개념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혼돈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인간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하면 형식과 규격이 요구되고 형식은 계급과 부조리한 관료제를 양산해 주객을 전도시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어 오는 조직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개인의 수준에서 자유를 누리고자 합니다. 중세의 구태에서 개인의 가치를 발견한 르네상스, 구제도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를 도모한 시민혁명, 공산주의의 비인간성으로부터 자아를 해방하고자 하는 일련의 탈출들이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습니다. 종교적 차원에서 본다면 함석헌, 다석 유영모 선생님 등이 보여주신 무교회주의 정도가 내적 가치에 충실하고자 했던 시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개인이 부조리한 공동체를 벗어난다고 해서 이상적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거라사 지방의 광인 이야기는 이를 명백히 증명합니다. 그는 사회와 가족을 떠나 홀로 무덤가에 거하던 광인이었습니다. 자신을 얽매던 관계의 사슬로부터 자유를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을 모두 벗어 던진 채 거칠 것이 없는 삶을 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돌로 자신을 상하게 할 수밖에 없는 한계적 인간 그 자체였습니다. 외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면 할 수록 스스로의 규제와 한계에 노출되고 그 장애를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자해만이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갔습니다. 결국 개인주의 또한 인간의 이상적 자유를 담기에는 부족한 그릇임이 판명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혹 '개인'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환상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위적 조직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개인이라고 해서 늘 긍정적 가치만을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물론 저의 입장에서는 나치의 전체주의보다는 키에르케고르의 극단적 개인의식에 비롯된 실존주의가 인류의 건강에 훨씬 덜 해롭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그러한 삶에 동경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는 성급하게 개인, 공동체를 나누려 하기보다 어느 그릇이든지 최대한 충실하게 내용을 담아내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에 영적 분별력을 키워 가는 과정을 더한다면 '성전'은 온전해질 것입니다. 공동체는 '공동체'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는 독특한 내용이 있고, 개인은 '개인'이라는 그릇에 담을 내용을 가집니다. 그 내용으로 말하자면 본질은 하나되 그릇의 모양을 고려해 조금씩 모습을 달리합니다. 같은 재료를 삶으나 튀기나 그 원료는 동일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그릇에 걸맞는 음식이 담겨질 때 비로소 그날의 상은 훌륭한 진수성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세희
 :  저는 기본적으로 성숙한 개인들의 모여야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들이 훌륭한 성전으로 자라나야 이들이 이루는 교회가 성숙해질 수 있다는 생각인데, 개인들이 훌륭한 성전으로 서기 위해서는 훌륭한 교회가 필요하므로 결국 상호의존적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저는 개인들의 구원을 위해 공동체가 도구로 주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무언중에 갖고 있었는데, 최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공동체 역시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개인과 동등한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배우게 되어 감사합니다. 2003/01/10
황두용
 :  교회를 영적 공동체라고 할 때 그 공동체의 뜻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삶의 내용에 근거함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사람의 모임이라는 뜻보다 삶의 내용을 띠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삶을 살므로 공동의 삶이 보이게 될 때 공동체라는 것도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동의 삶을 살게 되는 '나'를 의식하게 되어감에 따라 공동의 '나'라는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나'를 하나님의 '나'로 의식하게 됨에 따라 하나님의 성전인 '나'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들려서 몇자 적고 갑니다. 200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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