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교회입니다. 환영합니다.
예람교회입니다. 환영합니다.
예람교회입니다. 환영합니다.
 
 

 
사귐과 대화

907   1/46

 내용보기

작성자


김지은

제목


1월 9일
* 오늘 사귐과 대화남기고 싶어서 제가 자원해서 기록합니다. 빠진부분이나 더 얘기하실 점 덧붙여주셔요.

구약의 모세, 신약의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이 달라 보입니다. 모세 그 주변에는 재앙, 전쟁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패역이 원인일 수 있지만 구약의 하나님은 잔인하다고까지 보입니다. 그에 비해 힘쓰지 못하는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의 모습은 왜 이렇게 상반될까 질문해보건대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그토록 순종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양편 바퀴사이를 연결하는 굴대가 있습니다. 이 굴대는 균형을 말합니다. 굴대문명에 속해있는 유대교-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나님께 맞서는 것을 구약의 신앙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판단은 파괴되어야 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나 타종교에는 관대하나 이단이라고 생각되면 더 시비를 가리게 되는 모습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이단도 종교인으로서의 생활을 한다고 인정하는 모습도 얘기됐습니다.
원칙은 지키지만 다름을 받아들이는 얘기를 하고,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를 사마리아 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경계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하나님만 아시고, 세례요한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물었으니 예수님의 입장은 사람들 중에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행을 가로막는 사마리아인들을 앞에 두고 왜 제자들과 예수님의 반응이 달랐을까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사람을 적대감을 품게 하는 이웃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구원의 대상으로 보는, 시야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인간들은 약자, 소수, 힘이 없다고 생각해서 힘을 쓰고 싶어하고, 서로 사나워지면서도, 자기중심에 빠져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데 한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버리고 내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사람과 다른 차원의 이야기에 감사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권위자의 영광에 취한 야고보와 요한과 달리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때 이르게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다가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나무를 저주하기도 하셨는데 언뜻 이러저러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우리가 대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을 대할 때에는 이해를 위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성급하게 되는 야고보와 요한의 우를 범하게 되는 바,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여야 할 것이라 나눴습니다.

김진숙  :  사귐과 대화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사회도 자주 돌아 와서 힘드실 텐데요.   2022/01/12
Prev
 2022년 6월 5일 [3]
항심 2022/01/12 381
Next
 10월 3일
항심 2022/01/12 381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Muzclub.com